ASAP Journal & 종로양복점 이경주 대표 인터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맞춤 양복점, ‘종로 양복점’

ASAP Journal(이하, A)은 1916년에 시작해 3대를 거치며 올해로 개업 100주년을 맞은 종로 양복점의 ‘이경주(이하, 이)’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100년을 이어온 오랜 역사, 3대를 거쳐온 정통성이 서려 있는 종로 양복점을 찾아갈 때만 해도 고즈넉한 건물에 점잖고 조용한 노(老) 신사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현대식의 비즈센터 건물에 자리한 종로 양복점을 운영하시는 이경주 대표는 예상보다 더욱 밝은 미소와 젊은 감각으로 종로 양복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돕는 이도, 그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지만, 이경주 대표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을 겪어오며 얻게 된 노하우와 여유가 서려있었습니다.

A)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대표님과 ‘종로 양복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안녕하세요. 종로양복점의 대표 이경주입니다. 우리 양복점은 1916년에 초대 대표셨던 이두영 할아버지께서 보신각 옆에 창업하시며 시작 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일본에 가셔서 양복을 배우셔서 운영하시다 아버지에게 물려주시고 그게 오늘의 저까지 3대를 이어 온 거죠. 그게 벌써 100년이 됐습니다.

종로양복점-1A) 사실 종로 양복점이기에 당연히 종로1가 한복판에 위치 한 줄 알았는데, 종로가 아닌 이곳 을지 비즈센터 빌딩 6층에 현재 자리 잡으신 게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이곳은 언제쯤 오시게 되었나요?

이) 처음엔 할아버지께서 보신각 옆에서 시작하셨어요. 그 건물이 은행 건물이었는데 은행 측에서 공간을 써야 한다고 해서 종로 1가쪽에 건물을 짓고 아래 층에는 매장, 숙직실을 두고 뒤에는 전체 공장 전체를 해서 운영을 했죠.그러다가 50년에 6.25사변이 일어나서 대구로 피난을 갔어요. 대구에서 종로 양복점 간판을 걸어놓고 2~3년 정도 하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원래 그 자리에서 운영하게 됐지. 그런데 그 동네가 재개발이 되서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광화문 새문안교회 옆쪽에서 운영을 하는데 주인이 또 그 자리를 써야 한다고 하지 뭐야. 그래서 결국 이 비즈센터로 오게 됐어요. 그게 벌써 5년 됐네요. 자꾸 재개발이니 뭐니 옮기다 보니 그것도 만만치 않아서 아예 개발을 한 동네로 오게 된 거죠.

A)종로를 떠나실 때 마음이 정말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이) 물론 그렇죠. 상호가 종로양복점이기 때문에 종로를 안 벗어나려고 했지요. 누구는 강남으로 가면 돈도 더 많이 벌수도 있다고도 하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준 사람도 있어요. 물론 나도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 강남 가면 고급 손님들도 많고. 그래도 할아버지 때부터 지켜온 종로니까 못 떠나고 지키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종로 가까운 데로 온 거에요. 그래도 뭐 여기서도 종로는 보이니까(웃음). 이제는 예전 같이 붐비지도, 일감이 넘치지도 않지만 그래도 재미 있어. 지금은 친구들도 다 퇴직하고 심심한 차에 잘 됐지. 여기 종로 양복점이 어떻게 보면 우리 친구들 만남의 장소가 됐거든? 나야 아직 현역이고 이 가게가 내 가게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뭐 그런 재미도 있는거지요(웃음).

종로양복점-2A) 지금 입고 계신 옷도  체형에 딱 맞아 보입니다. 본인 옷도 직접 제작해서 입으시는 건가요?

이) 그렇죠. 입고 있는 모든 옷은 다 손수 제작해서 입고 있습니다.

A)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몸의 치수를 재거나 본인 옷을 만드는 거랑 다를텐데, 혹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 차이점이 뭐 있겠어요?(웃음) 다 똑같지. 내 옷이라고 더 잘 해 입고, 손님 옷이라고 뭐 덜 신경쓰지 않지. 모든 옷은 다 똑 같은 정성이 들어가요.

종로양복점-3A)보유하고 계신 원단이 많은데요. 원단을 고르시는 기준이 있나요?

이) 기준이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패션이니까 유행이 있잖아요? 색상이든 원단의 종류든. 자꾸 유행의 흐름이 변하니까 그에 맞춰서 사입해 구비해 두는거지요. 예를 들어 손님이 선호하지 않는 색상을 사놔봤자 안 나가잖아요. 재고가 되지. 그러니까 그 해에 어느 색상이나 패턴이 잘 나간다는 흐름에 맞춰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A) 유행의 흐름을 파악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이) 나만의 특별한 노하우라 할 건 없고, 매스컴이나 각종 미디어를 접하면서 그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거죠. 드라마에 나오는 양복, 외국 유명 인사들의 양복, 정재계 인사들의 양복은 아무래도 좀 더 촉각을 세우게 되는거지.

종로양복점-4A) 대표님 앞에 있는 아이패드도 역시 이런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한 미디어가 되는 건가요?

이) 그렇죠. 나이 먹은 사람이 재단을 한다고 해서 옛날 스타일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웃음). “뭐 노인네가 하는데 노인네 같이 나오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요새 뭐 결혼 예복도 그렇고 다양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요. 사실 그런(트렌드를 파악 하는) 눈은 결코 뒤떨어지지가 않거든. 그래서 오히려 감탄하는 젊은 친구들도 있고. 그런 분들 보면 일하는 나도 재미 있고 그렇지요(웃음).

A) 신체 치수를 재는 순간부터 완성까지, 어떤 과정이 가장 손이 많이 가나요?

이) 그런 게 어딨어(웃음). 모든 과정이 다 중요하죠. 우선 신체를 보고 손님의 신체 특성을 익혀야 해요. 어디가 굽어지고 어디가 나오고 이걸 다 파악을 한 뒤 치수를 재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가 있나. 그 후에 이제 패턴과 재단을 하고 가봉도 하게 되고…. 그 후에도 모든 과정을 빠짐 없이 거치게 되는데,  어느 부분은 신경을 더 쓰고 어느 부분은 신경을 덜 쓰고 하게 되면 옷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모든 과정 하나 하나가 전부 다 중요해요.

A) 불과 몇 년 전에는 맞춤양복이 트렌드가 되어 젊은 테일러들도 맞춤양복 시장에 발을 들였는데요. 요즘은 맞춤양복 시장 상황이 대체로 어떤가요?

이) 요즘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배우려는 사람도 많이 오고. 아무래도 기성복은 식상하잖아요? 맞춤양복에 비해 잘 맞지도 않고. 그래서 요새 젊은 사람들도 열심히들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 아쉬운 부분은, 일부 젊은 사람들이 가게는 열었지만 양복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는 다르게 좀 더 장사에 초점을 맞추는 거지. 일단 손님을 끌어서 공장에 맡기게 되는데,  그러면 그 기술자들이 다 만들어서 맞춰줘요. 그렇게 되면 결국에 대량으로 맡겨버리니까 가격은 낮아지게 되는 거지. 자연스레 정성도 덜 들어가게 되고.

직접 치수를 재긴 하니까 기성복 보다는 잘 맞기는 해요. 그러다보니 저렴한 가격에 찾는 손님도 많고. 그래서 그런 가게들이 요즘 많아요. 강남에도 있고 뭐 없는 데가 없을 정도인데,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거야 당연히 좋지만 이런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A) 이제 대표님도 슬슬 종로 양복점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슬하에 아드님과 따님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종로 양복점을 이어 받을 의사를  밝히셨나요?

이) 아니 뭐 의사가 있다고 없다고 지금 얘기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아들이 지금은 화가인데 뭐 한 마디로 안 하겠다는 말도, 한다는 말도 없어(웃음). 그러니까 나도 지금 애매해요.

A) 3대째 이어온 가업이다 보니까 대표님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 그럼요. 내가 지금 최대의 고민이 그거야. 누가 이어받아줘야 하는데…. 기술을 이어 받는 것도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도 아닌 거고, 게다가 요즘 화가가 그렇게 벌이가 좋지가 않잖아요? 수입에 있어서는 그래도 내가 낫지. 그러다 보니까 은근히 우리 아들도 이어 받을 마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뭐 조만간 무슨 수가 나겠지요(웃음). 나는 웬만하면 우리 아들이 이어받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종로양복점-5A) 최근 자랑스럽게도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근현대 직업인 생애사’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고 정말 기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이) 그렇죠(웃음). 서울시에서 미래 유산이라고 저런 이름을 지어 주니까. 기분이야 좋죠. 특히 시민이 뽑은 거라니까 그만큼 의미도 있고 보람이 있죠.

A)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고, 서울시에서도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부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없으신가요?

이) 있죠. 왜 없겠어요(웃음). 예전에는 가업을 이어 받으면 세제 혜택도 있곤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죠. 아 물론 나 같은 사람을 문화유산으로 선정해 표창을 해준 건 당연히 고맙죠. 하지만 이렇게 가업을 이어 나가는 사람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하다 못해 세금이라도 조금 낮춰준다면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우리나라에서 왜 이렇게 가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느냐면,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세금이 자꾸 올라가요. 그러다 보니까 폐업 신고 하고 다시 열고 다시 폐업 신고 하고 다시 열고 이런 반복이지…. 조금 더 실질적인 지원이 있으면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가업도 이어 나가고 가게를 오래 유지하면서 전통을 지켜 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종로양복점-6A) 3대째 이어받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종로양복점을 지켜온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아까워서….(웃음) 역사가 아까워서. 예를 들어 내가 지금 그만 둔다 그러면 지나온 100년이 아깝잖아요. 현재 하고 있어야 의미가 있지 과거에 멈춰버린 100년 역사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아까워서 이걸 못 놔요(웃음). 또 이 가게가 나 혼자 꾸려온 게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도 있고. 나중에 내가 하늘에서 할아버지랑 아버지를 만났는데 “종로 양복점은 어떻게 하고 온 것이냐?”하고 물으셨을때, 가게를 잇지 못하고 왔다고 하면 “예끼 이놈! 다시 가서 가게 열고 와라!” 하시면 그땐 어떡하겠어요?(웃음)

A) 진심으로 ‘종로 양복점’을 오래 보고 싶습니다. 종로 양복점의 향후 계획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이) 종로 양복점이 올 해로 100년이 됐으니까 앞으로 누가 이어받든 향후 200년, 그 이후까지 이어지도록 노력을 할 거에요. 그게 우리 종로 양복점을 찾아주시는 고객들에게도 보답이 되는 길일 거고. 내가 잘 해서 100년이 된 게 아니라 그 동안 고객님들이 사랑을 해주시고 성원을 해주셨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에요?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하는 거지.

A) 끝으로 ASAP Journal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양복도 패션이기에 유행의 영향을 받게 되잖아요? 내가 말 할 수 있는 건, 우리 종로 양복점이 패션을 완전히 앞서가거나 선도해 나가지는 않아요. 하지만 종로 양복점은 결코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게 양질의 양복을 제공할 겁니다. 그리고 옛 것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것도 받아들여 젊은 분들도, 나이 드신 분들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양복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렇듯 이경주 대표와 종로 양복점은 100년이란 세월에도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정체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요. 기존에 미디어에서 비췄던 100년 전통을 힘겹게 이어나가는 노(老) 사장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과거 정치 1번가에서 김두한을 비롯한 과거의 손님들과의 향수에 머물러 있는 종로 양복점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십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온 낡은 가위, 현대적인 디바이스인 아이패드로 대변되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에서 이경주 대표의 젊은 감각과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을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저 한해 두해를 보는 좁은 시각이 아닌 정성으로 옷을 짓는 ‘양복쟁이’로써 한 평생을 살아온 이경주 대표에게는 100년을 걸어온 지금보다는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는 강한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양복에 대한 진심과 여지껏 지켜 온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있기에 이경주 대표와 종로 양복점의 앞날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이경주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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