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있지만, ‘조국’은 없는 사람들

무국적자’의 다른 이름, 경계인.

얼마 전 교육 방송사인 ‘EBS’에서 ‘EBS 일요시네마’ 를 통해 ‘톰행크스(Tom Hanks)’가 열연했던 <터미널>(2004)이 방영됨과 동시에 실시간 인기 검색 어에 이름을 올리며 많은 이들이 주목했습니다.

영화는 파리 드골 공항에서 18년(1988~2006)을 살았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라는 실존 인물의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입니다. 실존 인물인 나세리의 경우와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인 ‘빅터 나보스키’가 이국(異國)의 공항(미국JFK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야 했던 이유는 본국(크라코지아) 쿠데타로 인해 일시적인 ‘유령 국가’가 되면서 자신의 국적은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역만리 땅을 찾았지만 ‘국적 불명’의 상태가 되어 미국에 입국할 수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버린 ‘빅터 나보스키’의 기구한 처지는 ‘생존’의 곤란함 보다는 ‘정체성’의 혼란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나세리의 경우를 보게 되면 그는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18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1999년 프랑스 정부에서 그에게 망명여권을 부여해 프랑스에 거류하는 것을 허용하기 도 했지만, 이를 거절 했다고 합니다. 나세리는 자신의 본국이 ‘이란’인 것도 부인하고 본인의 이름을 ‘알프레도 경(Sir Alfred)’이라 주장하는 등 정신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였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증세는 나세리가 이 국가에도, 저 국가에도, 세계의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 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체성의 혼란에서 기인된 것은 아닐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어느 개인이 특정 국가에 소속되는 것과 그에 따른 권리의무의 총체로서 한 국가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정치적.법적 개념”, “개인은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짐으로써 그 나라의 국민이 된다.” 로 ‘국적’의 일반적 개념을 표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이 안에는 국적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폭 넓은 의미 망이 소거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한 국가에 속한다는 것, 즉 특정 국가의 ‘국적’을 지니게 된다는 것은 그 국가가 지니고 있는 문화, 언어 등의 가치들을 체득함으로써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유아기, 청소년기에 습득하게 되는 특정 국가의 문화, 언어는 ‘국민’ 으로서 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특정 국가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성장했지만, 국적은 속해 있지 않을 경우’,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현재 거주중인 국가도 일본이지만 국적은 ‘일본’이 아닐 경우, 자신을 일본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면 그 개인이 겪게 될 정체성의 혼란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놓인 개개인의 숫자가 3만명에 달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것이 ‘먼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람들의 숫자라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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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在日, ざいにち]의 정체성 혼란을 주된 소재로 삼은 ‘쿠보즈카 요스케(Kubozuka Yosuke)’ 주연의 영화 <GO>(2001)

이 글의 주인공들은 재일조선인(대한 독립 이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재일조선인 1세)과 그 자손들을 일컫는 용어) 다른 말로 자이니치 [在日, ざいにち]라 불리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조선적 재일 조선인 들의 숫자는 2015년 기준으로 34,000명 정도인데요. ‘조선적’은 1940년대 일본의 패전 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사람들, 즉 일본에 남겨진 사람들의 관리를 위해 일본 정부에서 편의상 부여한 국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조선’이라는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며 ‘조선’은 ‘한국’과 ‘북한’, 두 국가로 분리되었기 때문인데요. 대다수의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한민국 국적은 취득했습니다.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이 이 두 가지의 선택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우리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들의 정체성이 한국, 북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즉, 그들은 남북분단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조선’을 자신들의 정체성이 속하는 국가로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거주하는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은 그야말로 ‘차별’과 ‘홀대’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조선학교’에 다니며 일본어와 조선어를 배우고, 일본과 조선의 역사, 문화에 대해 배우지만 일본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 어느 곳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에게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혀왔으며,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하는 등 여전히 차별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 또한 일본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재특회’를 위시한 일본의 극우단체들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의 입국불허 방침에 의해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조차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들을 홀대하는 이유는 이들을 교육하는 ‘조선학교’가 북한의 지원을 받는다는데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대로 북한의 사상에 감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들이 견뎌온 고난의 역사를 너무나 쉽게 부정해버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진 않을까요.

다행히도, 재일조선일들, 조선적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조명하여 그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적 재일조선인인 연극인 ‘김의철’의 이루어질 수 없는 대한민국 입국을 조명하고 있는 <항로>, 조선학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우리학교>, 조선학교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스스로의 민족성을 소취하고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60만번의 트라이>, <울보 권투부>같은 다큐 영화들이 대표적인데요. 일본어, 조선어를 배우고 사용하며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양 국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 자신을 지켜줄 국가가 부재한다는 데서 기인하는 불안감과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앞서 터미널의 예를 들었지만, 무국적자가 겪는 온갖 고난들은, 급증하고 있는 ‘난민’ 문제와 함께 꼭 해결되어야 할 인도적인 문제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조선적’이라는 ‘무국적의 국적’을 ‘불가피’하게 선택한 그들이 자초한 것이라 말하며, 그 책임을 그들에게 온전히 물어야 하는 것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 입니다.